영화리뷰81 건축학개론 (기억, 공간, 첫사랑)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첫사랑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 '뻔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설레고 아프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간 기억이 현재의 감정을 얼마나 뒤흔들 수 있는지를 조용하게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기억은 같은 시간을 다르게 저장한다건축학개론을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라는 느낌을 꽤 일찍 받았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는 방식, 즉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구조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선형 서사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배치해 관객이 두 시점을 동시에 비교하게 만드는 이야기 방식입니다. 이 .. 2026. 4. 24. 우리도 사랑일까 (권태, 감정변화, 관계균열) 오래된 연인과 함께 밥을 먹다가 문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괜찮지도 않은 그 순간. 2011년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는 정확히 그 순간을 2시간 가까이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로맨스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조용히 벌어지는 균열, 권태란 무엇인가권태(倦怠)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요. 심리학에서는 친밀감 포화 상태, 즉 상대에 대한 자극이 더 이상 새롭게 처리되지 않는 단계를 권태로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뇌가 그 사람에게서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영화 속 마고와 루는 5년을 함께한 커플입니다. 루는 집에서 레.. 2026. 4. 24. 아이 필 프리티 (자기인식, 자신감, 외모콤플렉스) 헬스장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려보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 적, 한 번쯤 있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꽤 자주 그랬습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를 보면서 그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외모가 달라진 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삶 전체가 다르게 굴러간다는 이야기. 생각보다 훨씬 깊이 박혔습니다.자기인식이 현실을 바꾸는 방식혹시 같은 상황인데도 어떤 날은 잘 풀리고, 어떤 날은 유독 안 풀린다고 느끼신 적 있습니까? 저는 그게 순전히 컨디션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아이 필 프리티의 주인공 르네는 스핀바이크에서 넘어진 뒤 자신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했다고 믿게 됩니다. 외형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달라진 건 오직 자기인.. 2026. 4. 23. 트루먼 쇼 리뷰 (시선 구조, 메타픽션, 자유의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단순한 아이디어 영화로 봤습니다. '주인공만 모르는 리얼리티 쇼'라는 설정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설정 자체가 영화의 전부일 거라고 짐작했죠.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트루먼 쇼는 설정보다 훨씬 깊은 곳을 건드리는 영화였습니다.시선 구조가 만들어내는 이중 관객영화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트루먼을 보고 있는데, 동시에 트루먼을 보고 있는 또 다른 관객들이 화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욕조에 들어가 맥주를 홀짝이며 트루먼의 일상을 시청하는 사람들, 세트장 달 안에 앉아서 모니터를 응시하는 총괄 책임자 크리스토프. 저는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저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등이 서늘했습.. 2026. 4. 18. 택시운전사 (역사적 맥락, 1인칭 시점, 감정 전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5.18을 다룬 작품이라 당연히 무겁고 고통스럽기만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역사의 비극이 아니라, 한 평범한 남자가 핸들을 돌리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거대한 역사를 한 소시민의 눈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역사적 맥락 — 광주의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나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당시 국내 언론은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 즉 미디어 검열(Media Censorship)이 전방위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디어 검열이란 정권이 특정 정보의 유통을 강제로 차단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 2026. 4. 17. 파리, 텍사스 리뷰 (빨간색 상징, 무성영화, 시선)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파리, 텍사스를 보고 나서 딱 그랬습니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로 꺼내는 순간 뭔가가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빔 벤더스의 이 작품은 198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올해 CGV 빔 벤더스 감독전을 통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극장에 걸렸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관람 그 이상이었습니다.빨간색이 말하는 것들 — 색채 상징과 시선 연출당신은 영화에서 특정 색깔이 반복된다는 걸 의식적으로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보통 그냥 흘려보내는 편인데, 파리, 텍사스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빨간색이 눈에 박혔습니다.트래비스는 텍사스 사막에 빨간 모자를 쓰고 등장합니다. 이후 빨간 수도.. 2026. 4. 16.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