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10 화이트 버드 리뷰 (플래시백 서사, 절제된 연출, 아동권리) 영화를 만들면서 플래시백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오래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보조 장치로만 쓰다 보니 항상 뭔가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그런데 화이트 버드를 보고 나서 그 고민이 조금 풀렸습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를 바꾸는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과거가 현재를 바꾸는 플래시백 서사 구조화이트 버드는 원더의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입니다. 원더에서 주인공 어기를 괴롭혔던 줄리안이 새 학교로 전학을 가고,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구조입니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42년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가 배경이고, 유대인 소녀 사라가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소년 줄리안에게 구출되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여기서 이 영화가 택한 서사 구.. 2026. 4. 14. 올란도 (시간과 정체성, 미장센, 실험영화) 틸다 스윈튼이 400년을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한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직접 보고 나니 설정의 황당함 같은 건 이미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올란도와 센티멘탈 밸류,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감정이 어떻게 화면에 담기는지, 그리고 시간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시간과 정체성: 올란도가 선택한 방식올란도(1992)는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미장센(mise-en-scène)에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세트, 배우의 동선 등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를 뜻합니다. 올란도는 이 미장센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대신 감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듭니다.제가 직접 영화.. 2026. 4. 13. 첨밀밀 리뷰 (엇갈림, 절제 연기, 현실 로맨스) 1997년 국내에 개봉한 홍콩 영화 첨밀밀은 OST 한 곡만으로도 세대를 초월해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해가는 사랑'을 담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래 남았습니다.엇갈림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무게첨밀밀의 서사 구조는 미장센(mise-en-scène)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인물, 공간, 조명, 소품 등 시각 요소 전체를 통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을 말합니다. 두 주인공 여군과 이요는 끊임없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타이밍이 엇갈리고, 그 틈새에서 감정이 쌓입니다.저는 영화를 만들 때 관계를 빠르게 진전시키려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초반.. 2026. 4. 12. 화차 영화 리뷰 (스릴러 장르, 미장센, 정체성 서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종 미스터리물이겠거니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차(2012)는 약혼녀의 실종을 쫓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를 지워가며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 질문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한 장의 서류가 만들어낸 미스터리, 그 팩트 구조문호는 약혼녀 선영과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선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경찰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고, 문호는 직접 단서를 쫓기 시작하면서 선영의 정체가 하나씩 벗겨집니다.개인파산(Personal Bankruptcy)이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개인파산이란 채무자가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법원에 신.. 2026. 4. 12. 로마의 휴일 (미장센, 카타르시스, 내러티브) 저도 처음엔 이 영화를 그냥 오래된 로맨스 영화로 넘길 뻔했습니다. 1953년작이라는 숫자가 주는 거리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단 하루짜리 이야기가 왜 70년이 넘도록 회자되는지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완성하는 방식이 이렇게 강력할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이뤄지지 않는 사랑이 만드는 미장센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솔직히 결말에 집중했습니다. 이어질까, 안 이어질까.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진짜 힘은 결말이 아니라 그 과정의 공간 구성, 즉 미장센(mise-en-scène)에 있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조명, 배경, 소품 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 연.. 2026. 4. 11. 위 리브 인 타임 (비선형 편집, 암 투병, 앤드류 가필드) 이 영화는 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정작 저를 붙잡은 건 그 설정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뒤섞어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 그 편집의 태도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제게 묘하게 오래 남았습니다.비선형 편집이 만들어낸 감정의 밀도위 리브 인 타임은 토비아스와 알무트의 관계를 시간순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 사랑에 빠지는 장면, 싸우는 장면, 그리고 병원 장면이 뒤섞여 있습니다. 처음 보면 낯설게 느껴지는데, 저는 솔직히 초반 15분 정도는 약간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그 어떤 선형 로맨스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이 구조를 영화 편집 용어로 비선형 내러티브(Non-linear N.. 2026. 4. 10.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