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도둑들을 봤을 때 저는 그냥 '화려한 배우들 모아놓은 오락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남은 건 폭발 장면도, 보석도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속내를 감춘 채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방식이었습니다. 1,298만 명이 극장을 찾은 영화인데, 그 이유가 단순히 스케일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앙상블 캐스팅이 만드는 캐릭터 구조의 긴장감
도둑들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입니다. 앙상블 캐스팅이란 주연 한 명을 중심에 두는 대신, 동등한 비중의 여러 캐릭터가 집단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는 그 방식을 상당히 밀도 있게 구현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보면서 느낀 건데, 이 영화의 긴장감은 '작전이 성공할까'보다 '저 사람이 언제 배신할까'에서 나옵니다. 목표는 같아도 각자의 속내가 다르다는 걸 초반부터 은근하게 깔아두기 때문에, 관객은 시종일관 팀원들을 의심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흐름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아, 나도 지금 저 사람 믿고 있지 않구나'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캐릭터 구성 면에서 최동훈 감독이 공들인 흔적이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가를 먹거나 씹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건 단순한 배경 연기가 아닙니다. 감독은 "도둑들도 기본적으로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배우들에게 계속 뭔가를 편하게 먹으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마카오 박이 젖은 땅콩을 씹고, 씹던껌이 껌을 씹고, 십던검이 막걸리를 꺼내는 장면들이 모두 이 맥락입니다. 범죄를 일상처럼 살아온 사람들의 체온이 이런 디테일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앙상블 구조는 강점이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를 가집니다. 캐릭터가 많아질수록 각 인물을 충분히 소화할 서사 공간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일부 캐릭터는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하고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체와 줄리 같은 경우는 그나마 플래시백을 통해 사연이 전달되지만, 뽀빠이의 배신 동기는 지나치게 간결하게 처리됩니다. 이런 부분을 두고 "캐릭터가 너무 단편적이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둑들이 만들어낸 캐릭터 구조의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는 공유하지만 동기는 전부 다른 인물 구성
- 음식과 씹는 행동을 통한 인간적 면모의 시각화
- 플래시백(flashback) 시퀀스를 통한 인물 과거 제시
- 대사와 액션 사이의 군더더기를 없앤 빠른 컷 편집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에서 과거 사건을 삽입하여 인물의 동기나 관계를 설명하는 영화적 기법입니다. 도둑들은 총 네 차례의 플래시백을 중반부 이후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캐릭터의 사연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데, 이 방식이 긴 설명 없이도 인물 간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쌓아준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앙상블 연출 방식과 플래시백 활용의 명암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관찰한 건 화면 분할(split screen) 기법의 사용이었습니다. 화면 분할이란 하나의 화면을 둘 이상으로 나눠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여주는 편집 방식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이 기법을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서도 즐겨 사용했는데, 도둑들에서도 마카오 다이아 탈취 시퀀스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여러 인물이 동시에 움직이는 상황에서 화면 분할은 관객이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저도 처음엔 인물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겠다 싶었는데, 막상 보다 보면 그 복잡함이 오히려 장르적 쾌감으로 전환되는 구조였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한 화면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게, 이 영화가 주는 독특한 재미 중 하나입니다.
로케이션(location) 구성 방식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로케이션이란 영화 촬영을 위해 실제 장소를 사용하거나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데, 도둑들은 마카오·홍콩·부산·양수리 등 여러 지역을 혼합하면서도 관객이 공간적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편집과 CG를 정교하게 조합했습니다. 실제로 예니콜이 건물 외벽을 타는 시퀀스는 마카오 풀샷을 전면 CG로 제작하고, 배우는 빈 세트에서 연기한 뒤 합성한 것입니다. 마카오 당국이 항공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정제된 화면이 나왔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알고 보면 보는 맛이 다릅니다. 전지원 배우가 스턴트 없이 직접 액션을 소화했다는 것, 전지원 배우 본인이 담배를 전혀 못 피는데도 담배 연기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했다는 것, 금고 해체 장비를 실제 금고 회사에 자문을 받아 설계했다는 것 등을 알고 나면 같은 장면도 다르게 보입니다. 이런 세부 정보들이 쌓였을 때 "이 장면을 이렇게 만들었구나"라는 감각이 생기는데, 그게 이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야기 구조 자체가 장르적으로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히스트 무비(heist movie)라는 장르, 즉 조직이 모여 고가의 물건을 훔치는 계획을 중심에 두는 범죄 오락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작품이 있어 왔습니다. 그 문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반전이 없다"는 평가도 틀리진 않습니다. 다만 장르 문법을 따른다고 해서 그 완성도까지 낮은 건 아닙니다. 익숙한 구조 안에서 캐릭터와 속도감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핵심인데, 그 기준으로 보면 도둑들은 제 몫을 충분히 해낸 영화라고 봅니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작품은 2024년 기준 누적 30편에 달하며, 이 중 범죄·액션 장르의 비중이 상당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도둑들은 그 흐름의 초기를 연 작품 중 하나로, 이후 한국 범죄 오락 영화의 앙상블 구성 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상업영화에서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의 총합이 장르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과 도둑들의 연출 방식은 무관하지 않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정리하자면, 도둑들은 흠 없이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캐릭터 일부가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구조적 새로움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재미'를 이만큼 밀도 있게 구현한 한국 영화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오락영화로서의 완성도와 연출 디테일,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블루레이나 고화질로 한 번은 꼭 보시길 권합니다. 화면 분할 시퀀스와 인물들의 눈빛, 그리고 그 작은 애드리브들이 훨씬 선명하게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