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파리, 텍사스를 보고 나서 딱 그랬습니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로 꺼내는 순간 뭔가가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빔 벤더스의 이 작품은 198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올해 CGV 빔 벤더스 감독전을 통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극장에 걸렸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관람 그 이상이었습니다.
빨간색이 말하는 것들 — 색채 상징과 시선 연출
당신은 영화에서 특정 색깔이 반복된다는 걸 의식적으로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보통 그냥 흘려보내는 편인데, 파리, 텍사스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빨간색이 눈에 박혔습니다.
트래비스는 텍사스 사막에 빨간 모자를 쓰고 등장합니다. 이후 빨간 수도꼭지를 틀지만 물은 나오지 않고, 모텔 앞에는 빨간 네온사인으로 '빈방 있음'이라는 글씨가 깜빡입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들을 봤을 때는 그냥 우연한 소품 배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이어질수록 이 반복이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어 있는 수도관, 비어 있는 방, 그리고 내면이 텅 빈 남자. 빨간색은 공허함의 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빨간색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색채 상징(color symbolism)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색채 상징이란 특정 색이 서사 안에서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감정이나 주제를 암시하는 영화적 장치를 말합니다. 트래비스가 꿈꾸던 텍사스 주 파리에는 레드 리버(Red River)가 흐릅니다. 빨간색이 공허함에서 이상향으로 의미가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트래비스와 아들 헌터가 제인을 찾아 떠날 때 두 사람이 빨간 상의를 공유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닿고 싶었던 그 마음이 색깔 하나로 표현된 것입니다.
시선 연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래비스와 헌터가 가까워지는 변곡점은 함께 홈비디오를 보는 장면인데, 이때 두 사람은 같은 프레임 안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인물, 오브젝트, 조명, 시선의 방향 등 모든 시각적 요소의 총합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에 담기기 전에 감독이 '설계'하는 화면 구성 전체를 일컫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 방향이 일치하는 바로 그 순간, 헌터는 처음으로 트래비스를 '아빠'라고 부릅니다. 말보다 시선이 먼저 관계를 완성한 셈입니다.
제인과의 장면은 더 직접적입니다. 유흥업소의 유리벽으로 단절된 공간에서 트래비스는 첫 번째 방문 때 제인을 일방적으로만 바라봅니다. 다음 날 재방문하여 그는 뒤로 돌아앉습니다. 자신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 둘의 조건을 동등하게 맞춘 것입니다. 시선의 평등이 이루어진 후에야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됩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 시퀀스는 정말 교과서 같았습니다.
파리, 텍사스에서 빨간색이 담당하는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텍사스 초반부: 트래비스의 내면적 공허함을 암시하는 색
- 중반부 부자의 빨간 상의: 아버지와 아들 간의 연대와 소망을 표현
- 레드 리버: 트래비스가 꿈꾸던 가족과의 이상적 삶을 상징
- 신호등의 빨간빛: 결정적 선택의 순간, 잠시 멈춤과 방향 전환을 암시
세 편의 영화, 그리고 무성영화에 대한 질문
혹시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이건 사실 세 편짜리 영화다'라는 생각이 드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파리, 텍사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감각을 경험했습니다.
이 영화는 지역에 따라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텍사스에서의 초반부,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중반부, 휴스턴에서의 후반부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배경만 다른 게 아닙니다. 각 단락은 톤도, 장르도, 심지어 영화 문법 자체가 다릅니다.
텍사스 초반부는 무성영화(silent film)에 가깝습니다. 무성영화란 대사 없이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 형식으로, 1920년대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배적인 형식이었습니다. 트래비스는 의사에게도, 4년 만에 만난 동생 월트에게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감정은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표정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찍으면서 대사로 설명하려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장면들을 보면서 그게 얼마나 불필요한 짓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LA 중반부에서 트래비스가 말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유성영화(sound film)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유성영화란 대사와 음향이 영상에 동기화되어 재생되는,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접하는 영화 형식입니다. 가족 간의 따뜻한 티키타카가 이어지고, 분위기는 한층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월트의 집은 공항 근처라 비행기 소음이 수시로 끼어듭니다. 그 순간마다 화면이 소음에 잠식되는 느낌이 들면서, 역설적으로 소리 없는 텍사스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휴스턴 후반부는 정보의 홍수입니다. 트래비스가 제인에게 그간의 모든 과거를 털어놓는 이 시퀀스는 언어적 밀도가 극도로 높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부분에서 집중력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너무 많은 말들이 쏟아지면서 오히려 감정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미지가 말을 대신하던 앞부분의 침묵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벤더스가 텍사스 시퀀스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근거는 제목에서도 발견됩니다. '파리, 텍사스'라는 제목은 영화를 보기 전엔 누구나 프랑스 파리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제가 개봉날 극장에 뛰어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극 중 월트도 트래비스의 첫마디를 듣고 "프랑스 파리 말하는 거냐"고 묻습니다. 제목 자체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치인 셈입니다. 이 의도적 혼동은 텍사스를 파리처럼 믿어버린 트래비스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 집착으로 변한 트래비스 자신의 의처증과 맞닿아 있습니다.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이 가족의 DNA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벤더스를 시네아스트(cinéaste)로 분류합니다. 시네아스트란 영화를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예술 형식으로 접근하는 감독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파리, 텍사스에서 텍사스를 배경으로 기차가 달리는 장면은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 영화 '열차의 도착'을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 해석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탄생에 대한 오마주를 무성영화 감성의 1번 영화에 배치했다면, 그것은 벤더스가 이미지를 언어보다 상위에 두고 있다는 선언처럼 읽힙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아카이브).
실제로 짐 자무쉬 감독이 파리, 텍사스를 보고 벤더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는 이 작품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자무쉬의 영화 역시 말보다 이미지, 설명보다 여백을 택하는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두 감독이 공유하는 비언어적 감수성이 파리, 텍사스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시각은 영화사적으로도 타당해 보입니다(출처: 베니스 국제 영화제).
파리, 텍사스는 극적인 사건 없이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느리고 절제되어 있어서 어떤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강한 표현이 될 수 있는지를 진짜로 배웠습니다. 말 대신 시선으로, 설명 대신 여백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했습니다. 영화를 만들거나 혹은 그냥 깊이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극장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