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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성 라퓨타 (제작비화, 세계관, 바루스)

by 두쫀쿠먹고싶다 2026. 4. 23.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냥 잘 만든 모험 애니메이션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소년이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를 만나고, 둘이 함께 전설의 섬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그런데 다시 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라퓨타라는 공간 자체가 인간의 욕망과 문명의 결말을 담은 하나의 상징이었고, 그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탄생한 작품, 그 제작 비화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알고 나면 영화 자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혹시 지브리 스튜디오가 처음부터 탄탄한 계획으로 세워진 곳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흥행 이후 얻은 수익 전부를 오랜 동료 타카하타 이사오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을 삼켜버렸고, 결국 투자금을 모두 소진하고도 완성되지 못한 채 추가 자금을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집 한 채만 남은 상태에서 그가 찾아간 사람이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의 편집장 스즈키 토시오였는데, 스즈키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대신 영화 한 편을 더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순간 하야오가 꺼낸 아이디어가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구상해뒀다고 했을 만큼 이야기가 막힘없이 쏟아졌다고 하죠. 제가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좀 소름이 돋았습니다. 준비된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도 꺼낼 게 있다는 걸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문제는 어떤 스튜디오에서도 하야오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재능은 인정하지만 작업 방식이나 현장 태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스즈키와 하야오, 그리고 타카하타 이사오까지 셋이 모여 직접 스튜디오를 차리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스튜디오 지브리가 탄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브리가 생겨난 계기가 타카하타의 다큐멘터리 제작비 부족 문제였는데, 정작 그 다큐멘터리는 상업적으로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며 실패로 끝났습니다. 실패가 전설적인 스튜디오를 낳은 셈입니다.

제작비는 나우시카의 두 배 수준인 약 42억 원으로 책정되었고, 하야오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듯 예산을 설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타겟 관객을 성인 오타쿠층이 아닌 초등학생 아이들로 잡는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오면 부모가 따라오고, TV 방영 시 황금 시간대를 노릴 수 있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면 비디오 판매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듀서 스즈키는 성인 로맨스 영화처럼 마케팅하는 전략을 밀었고, 둘의 방향이 처음부터 어긋난 채 극장 개봉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과는 관객수 77만 명, 흥행 수익 약 110억 원. 제작비 대비 두 배 이상의 수익이지만, 마케팅 비용과 누적 부채를 감안하면 목표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화는 TV 방영을 통해 사회 현상 수준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바루스(Barusu)라는 주문이 외쳐지는 장면에 맞춰 트위터에 동시 게시되는 글 수가 2011년에는 초당 2만 5천 건, 2013년에는 초당 14만 건에 달했습니다. 이는 신년 인사 트윗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로, 트위터 서버가 마비될 정도였고 결국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World Records)에 최다 동시 트윗으로 등재되었습니다(출처: 기네스 세계 기록 공식 사이트). 이후 일본의 한 IT 기업이 바루스를 상표 등록하려 했지만, 일본 특허청은 이를 공공의 문화적 자산으로 보고 거절했다는 일화까지 남았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제작 비화에서 주목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브리 설립의 출발점은 타카하타 이사오 다큐멘터리의 제작비 부족이었음
  • 어떤 스튜디오도 하야오를 받아주지 않아 직접 스튜디오를 창립
  • 제작비 약 42억 원, 극장 흥행 수익 약 110억 원으로 목표에는 미달
  • TV 방영 이후 바루스 동시 트윗으로 기네스 기록 달성

라퓨타의 세계관과 바루스가 품은 의미

이 영화를 단순한 모험 판타지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저는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이야기가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지에 계속 놀랐습니다. 특히 라퓨타라는 이름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바루스라는 주문의 어원까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안에 담긴 의미가 완전히 다른 층위에 존재했습니다.

라퓨타라는 명칭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창작한 단어가 아닙니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발표한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 3권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섬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원작에서 라퓨타는 세상을 지배하는 하늘의 통치국으로, 반란을 일으킨 도시에 돌을 던지거나 태양과 비를 차단해 굶겨 죽이고 심지어 섬 자체를 하강시켜 도시를 짓밟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저작권이 이미 만료된 작품이었기에 법적 문제도 없었고, 하야오는 이 설정이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해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라퓨타가 스페인어로 직역하면 매춘부를 뜻하는 단어라는 점입니다. 걸리버 여행기의 원작자 스위프트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언어 천재였고, 작품 속에 언어유희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라퓨타라는 이름도 지배 세력을 우스꽝스럽게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단어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하야오는 이 사실을 몰랐고, 이후 수차례 해명과 해프닝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스페인어권 국가들에는 라퓨타라는 이름을 빼고 천공의 성이라는 제목으로만 수출되었습니다.

라퓨타의 세계관 설계도 정교합니다. 공식 설정집에 따르면, 라퓨타는 수천 년간 비행석(飛行石)을 이용해 하늘에서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비행석이란 라퓨타 문명을 부양하는 핵심 동력원으로, 이것의 남용이 기상이변을 초래하고 대부분의 하늘 섬들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살아남은 라퓨타의 주민들은 지상 환경과 단절된 채 오랫동안 무균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온 탓에 면역 체계가 완전히 퇴화되었고, 전염병이 돌면서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결국 왕은 백성들을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왔고, 그 과정에서 왕가 내부에 분열이 생겨 시타와 무스카라는 두 갈래의 후손이 생겨나게 됩니다.

무스카의 안경 설정은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는 정통성을 갖지 못한 방계 후손으로, 라퓨타에 대한 지식을 공부로만 습득했습니다. 시력이 극도로 저하된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정인데, 이 안경은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기술이라는 도구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존재, 자연의 가치와 생명의 숭고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먼 권력을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바루스가 외쳐지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빛이 무스카의 안경을 산산조각 내고 그가 눈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자신이 그토록 숭상하던 문명의 빛에 역설적으로 눈이 멀어버리는 순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루스라는 주문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것은 하야오가 직접 만든 단어로, 어원은 평화를 뜻하는 터키어 바르슈(barış)에서 따왔습니다. 바르슈란 터키어로 평화, 화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시작해 '스'로 끝나는 짧은 음성 구조가 폭발과 비산을 연상시켜 무언가 끝났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에 수많은 후보 중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멸망의 주문이지만 그 뿌리에는 평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죠. 이 주문을 외치는 이들이 탐욕에 물든 어른이 아니라 순수한 두 아이라는 점에서, 바루스는 단순한 파괴의 주문이 아니라 선조들의 죄를 대신 끊어내는 속죄의 의식이자 대지에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선언으로 읽힙니다.

라퓨타의 조형적 설계도 구체적인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섬의 전체적인 형태는 하늘에 닿으려다 신의 경고를 받은 바벨탑(Tower of Babel)에서 차용했습니다. 바벨탑이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간의 오만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하늘까지 닿으려 쌓았으나 결국 무너졌다는 서사가 라퓨타의 운명과 겹쳐집니다. 세부 디자인에는 이탈리아의 천공의 마을이라 불리는 치비타 디 바뇨레죠와 프랑스의 몽생미셸이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이 두 장소의 사진을 찾아봤는데, 라퓨타의 실루엣이 어디서 왔는지 바로 느껴질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파즈가 살고 있는 슬래그 협곡의 배경도 그냥 그린 게 아닙니다. 하야오는 실제 영국 웨일스의 탄광 지역을 2주간 직접 답사했습니다. 당시 웨일스는 탄광 폐쇄에 반대하는 광부들의 파업이 한창이었고, 하야오는 무너져가는 산업 속에서도 공동체와 일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파즈와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 특히 광부들이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장면은 이때의 경험이 직접 반영된 것입니다. 이 장면이 단순 개그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은, 실제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면 훨씬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출처: 영국 국립 광업 박물관 웨일스).

저는 이 영화가 악과 선의 구도가 다소 뚜렷하다는 점에서 갈등의 복잡성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애초에 초등학생을 타겟으로 설계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단순함이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흐리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구조였던 것이죠.

천공의 성 라퓨타는 벼랑 끝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처음 극장 성적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 세대를 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그냥 모험 애니메이션으로 한 번, 그리고 이 글에서 소개한 배경을 알고 나서 한 번 더 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올 것입니다.


참고: https://youtu.be/m5W4Sjgxcmg?si=wA7DDKes4zaeoW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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