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파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 "억지로 눈물 짜내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 이공삼칠을 다 보고 나서 든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허탈함이었습니다. "왜 꼭 이런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라는 생각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홍진 감독 연출, 배우 외지 첫 주연작인 이 영화는 6월 8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당방위 인정의 벽, 현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영화 이공삼칠의 핵심 전제는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19살 윤영의 이야기입니다. 공장에서 미싱 작업을 하던 엄마가 작업 중 부상을 입고, 밤 알바를 마치고 귀가하던 윤영은 누군가에게 뒤를 밟히는 위협을 감지합니다. 결국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공장 사장과 격렬하게 맞붙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장이 사망하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흘러갑니다.
일반적으로 정당방위는 자신이나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정당방위(Justifiable Defense)란 급박한 부당한 침해에 대항하여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형법 제21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사망했을 경우 방위 행위의 정도와 상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답답했던 이유도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윤영은 명백히 위협받는 상황이었는데, 상대방이 없어지는 순간 그 상황을 증명할 방법 자체가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법원이 내린 판결은 징역 5년. 실제로 한국 법원의 정당방위 인정률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는 비율은 전체 관련 사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대법원). 이 수치를 알고 영화를 보면 판결 장면이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의 반영처럼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정당방위 판결이 불가능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해자 사망으로 인한 피해 상황 증언 불가
- 사체 훼손 상태가 심각하여 법적으로 불리한 증거 구성
- 사전에 합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정황 판단이 복잡해짐
- 피고인이 19세 미성년자로 법적 대응 능력의 한계
이 대목에서 영화는 단순히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취약 계층(legal vulnerable group)이 실제로 어떤 구조적 불이익을 받는지를 보여줍니다. 법적 취약 계층이란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인해 법적 보호와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신파를 기대했는데, 꽤 냉정한 사회 비판이 담겨 있었습니다.
교도소 생활과 모녀 관계, 위로는 거창하지 않았다
19살 나이로 교도소에 수감된 윤영은 수감 번호 2037로 불리게 됩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것, 그 장면 하나가 인물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충분했습니다. 수감 초기 윤영은 이른바 위계 서열 구조 안에서 집단 따돌림과 폭력을 경험하고,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극적인 탈출이나 반전이 아니었습니다. 모범수 해수가 우표와 편지지를 건네는 장면, 왕언니 순재가 말없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식이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걸 제 경험상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밥 한번 챙겨주는 것, 옆에 그냥 있어주는 것. 그게 전부였는데 오히려 더 깊이 남았습니다.
엄마와의 면회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윤영이 좋아하던 피자를 들고 면회를 오지만 음식물 반입 규정으로 인해 돌려보내야 하는 엄마, 그리고 면회실 유리 너머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딸. 이 장면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라는 설정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말로 위로할 수 없는 엄마가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자체로 딸에게 의미가 됩니다.
교도소 내 수감 생활은 교정 처우(correctional treatment)의 현실을 함께 드러냅니다. 교정 처우란 수감자를 단순히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복귀를 위한 교육·상담·훈련을 제공하는 전반적인 처우 과정을 뜻합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청소년 수감자가 성인 수감자와 혼재될 경우 보호보다 위협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 따르면 청소년 수형자에 대한 분리 수용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적용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법무부). 영화 속 윤영이 겪는 상황은 이러한 현실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영화는 후반부에서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방식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이공삼칠도 그 경향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 감정의 정화와 해소를 유도하는 극적 장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연출이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관객에 따라 다소 감정을 직접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몇몇 장면에서 "여기서 이렇게 나오면 눈물을 안 흘리라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출이 집중됩니다. 호불호가 갈릴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배우들의 내러티브 감정선(narrative emotional arc, 인물이 이야기 전개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흐름)은 비교적 진심 있게 전달됩니다. 인물 감정선이란 이야기 속 인물이 경험과 사건을 거치며 내면적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특히 첫 주연을 맡은 외지 배우의 연기는 예상보다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신인 맞나"라는 생각이 든 장면이 여럿 있었습니다.
영화 이공삼칠은 거대한 사회적 정의를 외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다 보고 나면 슬픔보다 허탈함이 더 오래 남습니다. 그 허탈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꼭 약한 사람이 이걸 다 감당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직접적인 메시지보다 훨씬 오래 남는 방식이었습니다. 올 여름 개봉하는 영화 중 감정의 무게가 다른 작품을 찾고 있다면 한 번쯤 극장에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