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복수를 다룬 첩보 영화라면 당연히 통쾌한 결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한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보고 난 뒤에도 며칠 동안 복수가 과연 정의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그리고 영화의 시작
1972년 서독 뮌헨에서 열린 올림픽 기간,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선수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9명이 인질로 잡혔으며, 협상 실패 이후 서독 경찰의 강경 대응 과정에서 인질 전원이 숨졌습니다. 테러범들 역시 사살되거나 생포되었고,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영화는 이 비극을 도입부 약 15분 안에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15분이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공포와 무력감이 충분히 전달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야기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꾸린 암살팀으로 넘어갑니다. 모사드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 수집 및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국가 정보기관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정교한 첩보 조직 중 하나로 꼽힙니다.
영화의 원작은 조지 조나스의 소설 분노: 복수로, 1986년에는 별도의 TV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습니다. 원작과 영화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임무를 그만두려 해도 국가가 재산 몰수 등의 협박으로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반면 스필버그 감독은 주인공에게 선택의 여지를 줍니다. 이 작은 차이가 영화 전체의 무게를 바꿔놓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연출 기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백미러 쇼트(Rear-View Mirror Shot): 앞과 뒤를 동시에 담아내는 구도로, 인물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분열되는 심리를 시각화합니다.
- 유리 반사 기법: 유리에 비친 피사체와 실제 피사체를 한 프레임에 담아 복수와 정체성의 이중성을 표현합니다.
- 영화음악의 불협화음: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아리아 결의 빛나건만, 바흐의 바이올린 샤콘느,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겹치며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불협화음(Dissonance)이란 음악적으로 조화롭지 않은 음들이 동시에 울릴 때 생기는 충돌감을 말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를 의도적으로 활용해 암살 직전의 심리적 불안을 청각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바로 오케스트라 연습 장면이었는데, 각 단원이 따로 연습하는 소리들이 포개지면서 만들어내는 불안감이 그 어떤 효과음보다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복수의 심리, 그리고 스필버그가 던진 질문
복수를 다룬 영화라고 하면 보통 두 가지 시각이 충돌합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행위라는 시각과,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일 뿐이라는 시각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전자 쪽에 더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주인공 아브너는 임무를 수행할수록 확신보다 의심이 커집니다. 표적을 제거할 때마다 그 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우고, 동료들은 하나둘 목숨을 잃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과정이 단순한 액션 시퀀스가 아니라 인물 내면의 균열을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엔 목표가 분명해 보였는데, 사건이 반복될수록 그 목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카운터테러리즘(Counter-terrorism)이란 테러 행위에 대응하는 군사적·정보적 활동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영화는 이 카운터테러리즘이 실제로는 테러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성공한 작전이라도 항상 예상치 못한 희생이 따르고, 작전의 성공 여부가 도덕적 정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는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첩보물이 아니라 일종의 도덕 드라마로 기능한다고 봅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그가 이 영화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에 비판적인 시선을 담았다는 점을 의외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측의 복수가 잘못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반면, 스필버그 감독은 복수 자체의 정당성보다 복수가 낳는 끝없는 연쇄에 집중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진 뉴욕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의 스카이라인이 등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5년 개봉 당시, 스필버그 감독이 미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꽤 직접적입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를 뿐이라고.
테러리즘 연구자들도 이 관점을 지지합니다. 보복 공격이 테러 조직의 와해보다 오히려 조직원 충원과 급진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RAND Corporation). 영화 속 아브너가 표적을 제거할 때마다 느끼는 공허함이 바로 이 지점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장면들입니다.
한편,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가를 두고도 의견이 나뉩니다. 일부에서는 원작 소설 자체가 실제 첩보 활동의 세부 내용을 과장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부는 영화가 묘사한 암살 작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공식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출처: 이스라엘 외무부 공식 사이트). 팩트와 재구성 사이 어딘가에 있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오히려 그 모호함이 영화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가 끝난 뒤 저는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명확한 결론을 기대했다면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결론을 내려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수와 정의가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확신이 균열되는 순간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것. 그게 제가 이 영화에서 가져온 생각입니다.
무거운 전개와 느린 템포 때문에 모든 관객에게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한 번쯤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고 싶다면, 뮌헨은 그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아무 생각도 안 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영화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