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어폰을 꽂으려다 그냥 가방 속에 집어넣은 적 있으신가요. 저도 딱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동안 음악을 틀지 못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이 워낙 크다 보니 화려한 뮤지컬 전기 영화를 기대했는데, 막상 나오고 나서 남은 건 기묘한 피로감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최고의 음악 영화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공연 재현 — 무대 위의 마법은 실제였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뮤지컬 바이오픽(Biopic), 즉 실존 인물의 삶을 음악과 함께 재현하는 전기 영화 장르는 공연 재현 퀄리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작품은 그 기준을 꽤 높은 수준으로 통과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조카인 자파르 잭슨이 성인 마이클을 연기했는데, 무대 위에서의 재현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문워크(Moonwalk)처럼 저 혼자서는 흉내도 못 낼 동작들이 스크린에서 펼쳐질 때, 잠깐이지만 '이게 맞나?' 싶은 착시가 올 정도였습니다. 마이클 사후 15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그 외형적 잔상이 워낙 강하게 남아 있다 보니, 이걸 대체할 수 있는 배우가 달리 있었을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퀸시 존스와의 스튜디오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킬러스 스루(Killer's Groove)라는 말로 표현되는 그루브 감각이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서 곡 전체의 긴장과 이완을 몸으로 조율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마이클이 릴 테이프 녹음 방식을 배우면서 보컬에 다이나믹을 얹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이나믹(Dynamics)이란 음악에서 소리의 강약 변화를 의미하며 감정 전달의 핵심 요소입니다. 그 장면 하나로 어린 천재가 어떻게 성인 솔 뮤지션으로 성장했는지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공연 재현이 좋았던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파르 잭슨의 퍼포먼스 재현도가 착시를 줄 수준으로 높았습니다.
- 스튜디오 장면에서 마이클의 음악적 성장 과정을 감각적으로 담아냈습니다.
- 펩시 광고 사고 장면 등 역사적 사건들도 재현도가 상당했습니다.
- BGM으로 마이클 곡의 백킹 트랙만 사용한 연출이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여기서 백킹 트랙(Backing Track)이란 주 보컬이나 멜로디를 제외한 반주 음원을 뜻하며, 원곡을 직접 틀지 않고 이 트랙만 깔아두면 관객의 기억 속 노래가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효과가 납니다. 음악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연출 기법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게 유독 잘 먹혔습니다. 음악 심리학 측면에서도, 인간의 뇌는 친숙한 멜로디에서 감정 기억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그 자극이 극대화된 것이죠.
음악 카타르시스 — 반쪽짜리라고 부르기 전에
이 영화를 두고 "반쪽짜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원래 1993년 네버랜드 급습 장면으로 시작하는 구성이었고, 성추문 의혹 이후의 붕괴 과정까지 담을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작 후반에 당시 합의문 속 한 조항, 즉 관련 사건을 극화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발견되면서 영화의 삼막 전체가 날아갔고, 대규모 재촬영 끝에 베드 투어 직전에서 끝나는 형태가 됐습니다.
이런 제작 과정의 한계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부분인데,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 즉 이야기가 갈등을 거쳐 해소로 나아가는 서사 구조가 이 영화에는 사실상 없습니다. 히트곡이 나올 때마다 하나의 챕터가 닫히는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 순서, 그러니까 음악가의 발표 작품 목록을 따라가는 구성에 가깝습니다. 서사보다 연대기에 가까운 방식이죠.
그런데 제 경험상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걸 영화적 완성도의 실패로 보시는데, 저는 그 판단이 이 작품의 작동 방식을 잘못 짚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영화를 보면서 팬들이 러브 스토리를 따라 부르고, 위키드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 영화가 노리는 건 법정 기록의 재현이 아니라 음악적 카타르시스(Catharsis)입니다. 카타르시스란 예술 경험을 통해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현상을 말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 이론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북미 개봉 이후 전 세계 음악 전기 영화 역사상 최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글로벌 누적 5억 8천만 달러를 넘긴 수치는,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감정 기억을 건드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음악 콘텐츠 소비와 정서적 반응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에서도, 라이브 음악 경험이 일반 청취보다 도파민 분비를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하버드 의과대학(HMS)).
다만 저에게 가장 무겁게 남은 건 공연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무대에 설수록 더 고립되는 한 인간의 모습, 사람들이 그를 스타로, 돈으로, 추억처럼 소비하는 방식이 반복될 때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문화가 한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무너뜨리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현상에 가까웠다는 걸 다시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고요.
영화를 보고 나서 취향이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기대하신다면 씁쓸한 뒷맛이 남을 수 있고, 마이클의 음악을 극장 음향으로 다시 경험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저는 둘 다였습니다. 화려함 속에 피곤함이 섞인, 그래서 집에 돌아와 한참 아무 음악도 틀지 못했던 영화였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음악적 감동을 우선으로 두고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