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니 애드센스 코드> 리 크로닌의 미이라 (오리엔탈리즘, 바디호러,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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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크로닌의 미이라 (오리엔탈리즘, 바디호러, 시나리오)

by 두쫀쿠먹고싶다 2026. 5. 2.


공포영화 한 편을 고르면서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싶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제목부터 직관적이고, 감독 이름까지 붙어 있으니 자신감 있는 작품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조금 복잡했습니다. 리 크로닌의 미이라,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완전히 나쁘다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뻔한 시나리오와 무너진 핍진성

이 영화를 두고 "클리셰(cliché) 덩어리"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여기서 클리셰란 너무 많이 반복되어 신선함을 잃어버린 진부한 장치나 표현을 뜻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저주받은 공간, 가족을 위협하는 빙의, 진실을 파헤치는 외부인이라는 구조가 거의 교과서처럼 나열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케이티가 석관에서 발견되는 순간부터 이미 다음 장면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저주 → 각성 → 가족 위협 → 비밀 추적 → 최후 대결, 이 흐름이 한 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관객을 놀라게 만들 수 있는 반전이나 탈출구가 없습니다.

시나리오의 또 다른 문제는 핍진성(verisimilitude)의 부재입니다. 핍진성이란 이야기 안에서 사건과 인물의 선택이 현실적으로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이 영화에는 이 부분에서 구멍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집트 형사 달리아가 비디오 테이프를 전달하기 위해 굳이 미국 뉴멕시코까지 날아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메일이나 파일 전송으로 충분히 해결될 일을 대서양을 건너서 처리합니다. 또 하나, 3천 년 된 석관에 사람이나 물건을 넣어 밀수하는 게 이집트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형사의 발언은 제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엄마 라리사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에서 섬뜩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전문가의 도움을 거부하며 고집을 부립니다. 이런 선택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녀가 왜 전문가를 믿지 못하는지에 대한 서사가 필요한데, 감독은 그 수고를 들이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캐릭터는 이야기를 억지로 끌고 가기 위한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 측면의 핵심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결말이 예측 가능한 일직선 플롯 구조
  • 캐릭터의 선택에 납득할 수 있는 동기 부재
  • 인물 간 행동의 전후 일관성 결여 (이빨을 뽑았다가 다음 장면에서 되살아나는 등)
  • 오컬트 장르 특유의 긴장감이 클리셰에 묻혀 작동하지 않음

공포 장르에서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란 영화 전체가 유지해야 할 분위기와 감정적 일관성을 뜻합니다. 진지한 공포 장면 직후에 어색한 유머가 삽입되면 관객은 감정이입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리 크로닌은 이 영화에서도 그 경계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리엔탈리즘이 채운 공포의 자리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공포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좀 더 들여다보면, 결국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 문화권이 비서구 문화를 이국적이고 신비로우며 열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정립한 개념으로,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관행이기도 합니다(출처: 에드워드 사이드 연구 아카이브, Columbia University).

이 영화가 이집트를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 맥락과 무관합니다. 피라미드와 석관은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신격화와 부활을 위한 왕족 전용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 따위는 무시하고, 악령을 봉인하는 주술 도구로 둔갑합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 이집트에서 고대 신앙이 실재하는 것처럼 그리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눈에 걸렸던 장면은 이집트 형사 달리아가 컴퓨터로 자료를 검색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녀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1980년대 수준의 구형 모니터입니다. 이 장면에서 제작진이 '이집트 = 구식'이라는 인식을 아무런 비판 없이 화면에 옮겨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수라고 보기엔 너무 노골적입니다.

영화 속 미라 소재 활용 방식도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사실 1932년 제작된 원조 미이라 영화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서구의 비서구 침탈에 대한 죄책감과 반성이 투영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파라오의 저주는 실재하는 공포였고, 그 공포는 역사적 맥락 위에 서 있었습니다. 반면 이 영화에서 미라는 케이티가 몸에 두르고 있는 천 조각, 즉 코스튬(costume) 수준에 머뭅니다.

바디 호러(body horror)라는 장르적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신체를 훼손하고 변형하는 장면을 통해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바디 호러란 신체 자체를 공포의 매개로 삼아 관객에게 본능적 혐오와 불안을 유발하는 공포 하위 장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연출은 장르 팬들에게는 나름의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성대를 잃은 캐릭터가 목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소리를 내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공포영화에서 고어(gore)란 신체의 절단, 훼손, 유혈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표현 방식을 뜻합니다. 눈알, 이빨, 살가죽 등을 소재로 한 장면들이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어, 고어 장르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나름 볼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전반적인 현실감의 부재로 인해 그 장면들이 진짜 끔찍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공포영화에서 공포가 작동하려면 관객이 그 상황을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지점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출처: 영국 영화분류위원회 BBFC - 공포 장르 기준).

이집트 문화를 단순히 공포의 배경으로 소비하는 방식이 불편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반면 팝콘 무비로 가볍게 즐기면 그만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이해하면서도, 팝콘 무비라는 이름이 무신경한 연출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리 크로닌의 미이라는 장르적 쾌감을 완전히 포기한 영화는 아닙니다. 후반부의 집중력과 바디 호러 연출은 분명 볼 만합니다. 다만 시나리오의 허술함, 캐릭터의 비논리적 선택, 그리고 이집트 문화를 맥락 없이 소비하는 방식은 끝내 걸립니다. 공포 장르, 특히 고어한 연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단 식사 직후는 피하시는 걸 권합니다. 저도 그걸 먼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참고: https://youtu.be/CJhbQaEnof8?si=53F12-4mkq-U8G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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