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상영 시간 내내 큰 사건 하나 없이 흘러가는데,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르누아르는, 11살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채 무언가를 알아버리는 여름을 그린 영화입니다.
거품 경제 속 아이의 여름: 1980년대 일본이라는 배경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80년대 일본은 단순한 시대 배경이 아닙니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bubble economy), 즉 자산 가격이 실체 없이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경제 과열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버블 경제란 주식이나 부동산 등의 가격이 실제 가치보다 지나치게 높아진 상태를 말하는데,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속은 비어 있는 시대를 뜻합니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 복제품이 가정마다 걸려 있고, "르누아르를 당신의 가정에"라는 광고 문구가 TV를 가득 채우던 시절이었죠.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그 시대 공기가 화면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색감 자체가 낡은 기억처럼 탁하고 따뜻해서, 1980년대를 직접 살지 않았는데도 그 계절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감독이 영화 제목을 르누아르로 정한 건 단순히 그림 한 점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가짜를 걸어 놓고도 만족하는 시대의 공허함을 그 한 단어에 욱여넣은 셈입니다.
주인공 후키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 케이지와 간병과 직장을 병행하며 지쳐가는 어머니 우타코 사이에 놓인 아이입니다. 집 안의 공기는 무겁지만, 그 무게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후키는 이 상황을 언어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몸으로는 분명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능력과 텔레파시 프로그램에 빠지는 장면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초자연적인 것에 손을 뻗는 건, 일종의 생존 본능에 가깝습니다.
성장 서사를 거부하는 연출 방식: 감각 중심의 내러티브
르누아르를 보면서 제가 계속 의식한 건 이 영화가 얼마나 집요하게 교훈을 피하는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장 서사(coming-of-age narrative)라고 하면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 구조를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서 성장 서사란 한 인물이 사건을 통해 내적으로 변화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르누아르는 이 공식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후키는 친구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하고, 폰팅 광고를 보고 직접 전화를 걸어 위험한 성인 남성과 접촉합니다. 이 에피소드들은 이른바 성장 서사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교훈도 없고, 극적인 전환도 없습니다. 위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후키는 무너지거나 반성하는 대신,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루밍(grooming)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중요합니다. 그루밍이란 성인이 아동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쌓고 서서히 경계를 허무는 행위로, 아동 성범죄의 전형적인 전조 단계를 가리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후반부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를 도입해 배우를 심리적으로 보호했다는 사실은 감독이 이 장면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란 영상물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신체적·심리적 안전을 전담으로 보호하는 전문직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스즈키 유이의 무표정이었습니다. 장례식 이야기를 영어 선생님에게 꺼내는 장면에서, 선생님이 흐느끼는 동안 후키의 얼굴은 다른 곳을 향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습니다. 아이의 감정은 어른의 언어로 설명되기를 거부하고, 대신 몸과 침묵과 시선으로 드러납니다. 감독은 2020년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춰 있던 시기에 초고를 썼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암 투병을 지켜보며 느꼈던 감각을 수십 년 만에 꺼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허구지만 감각만큼은 자전적이라는 말이 이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르누아르가 다른 성장 영화와 갈라지는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건이 아닌 감각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한다
- 주인공은 경험을 통해 변화하지 않고, 그저 경험을 통과한다
- 감정은 설명 대신 시선, 침묵, 행동으로 전달된다
- 위험한 상황에서도 교훈적 결말을 배치하지 않는다
아동의 심리 발달 연구에 따르면, 11세 전후는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동시에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단계입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APA). 르누아르의 후키가 언어 없이 감각으로만 반응하는 방식은 그런 의미에서 발달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정확한 묘사입니다.
감각 연출의 완성도: 배우와 영상미가 만든 것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스즈키 유이를 처음 오디션에서 보는 순간 "운명"이라는 걸 직감했다는 이야기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입니다. 당시 11살이던 스즈키 유이는 특기로 말 울음 소리를 흉내 냈는데, 감독은 이후 시나리오 전체를 그에 맞춰 수정했습니다. 말 울음 소리를 따라하는 장면, 경마장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는 장면, 마지막의 백마 판타지 시퀀스가 모두 캐스팅 이후 생겨난 장면들입니다. 배우가 영화를 발견하게 만든 경우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티가 납니다. 배우와 역할 사이의 낯섦이 없고, 연기라는 느낌보다 그냥 그 아이가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스즈키 유이의 연기가 그랬습니다. 특별히 눈물을 흘리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데, 화면 안에서 계속 무언가를 발산하는 아이였습니다.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도 이 감각을 뒷받침합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배경, 색채 등을 총괄하는 개념을 말합니다. 르누아르의 화면은 과도하게 선명하거나 깨끗하지 않습니다. 뿌옇고 무더운 여름의 질감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이 계절이 후키에게 얼마나 크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설명 없이 전달합니다.
한편,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전작 플랜 75는 75세 이상 노인에게 국가가 안락사를 권유하는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죽음이 제도화된 사회를 노인의 시선에서 담아냈다면, 르누아르는 반대로 가장 어린 시선에서 죽음 곁에 머무는 감각을 담습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감독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생애 양 끝에서 탐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영화진흥기구(유니재팬)에 따르면 플랜 75는 2022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특별 황금카메라 언급을 받은 작품입니다(출처: 유니재팬 UniJapan).
보고 난 뒤에도 특정 대사 하나가 아니라 장면과 감정의 잔상이 오래 남습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가 성장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후키는 여름이 끝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언가를 알아버렸을 뿐입니다.
잔잔하지만 분명히 남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르누아르는 좋은 선택입니다. 단, 빠른 전개나 명확한 메시지를 기대하고 들어가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동안보다 보고 난 뒤 더 길게 말을 겁니다. 전작 플랜 75와 함께 보면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이어가는지 더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