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공개된 사회가 과연 더 자유로운 사회일까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디스클로저 데이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생방송 도중 기상 캐스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언어. 그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단순한 SF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영화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내부고발자 다니엘이 손에 넣은 것
예고편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다니엘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비밀 조직 워덱스의 사이버 보안 관리자였는데, 실종 직원으로 분류된 채 등장합니다. 퇴사가 아니라 실종. 이 차이 하나가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단번에 설명해 줍니다.
다니엘의 설정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의 전형을 그대로 따릅니다. 내부고발자란 조직 내부의 불법 행위나 은폐된 사실을 외부에 폭로하는 인물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2013년 미국 NSA의 전 세계 무차별 통신 감시 프로그램인 PRISM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스노든은 NSA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다 수백만 명의 통신 기록이 무단으로 수집된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현재까지도 러시아에 망명 중입니다. 다니엘 역시 79년간 감춰온 기밀을 손에 넣고 전 세계 80억 명에게 동시 공개를 선언한다는 점에서 스노든과 구조적으로 겹칩니다.
제가 예고편에서 특히 주목한 장면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열어본 데이터베이스 화면에는 1919년부터 2004년까지의 날짜 기록이 나열되어 있었고, 모든 항목의 위치 좌표가 동일했습니다. 그 좌표는 미국 버지니아주 인근, 미 정보기관 밀집 지역과 인접한 곳을 가리켰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각기 다른 시점에 같은 장소에서 신호를 남기고 사라진 기록들. 이게 단순한 소품 디자인이 아니라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심어둔 복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워덱스라는 조직도 단순히 외계 존재를 추적하는 기관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예고편 속 모니터 화면에는 타국의 인구 통계, 암호화 통신 프로토콜(encrypted communication protocol), 심지어 GDP와 인플레이션 지수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암호화 통신 프로토콜이란 데이터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정보를 변환해 전송하는 보안 통신 방식을 의미합니다. 외계 존재를 감시하는 조직이 왜 각국의 경제 지표까지 수집하는가. 이 조직의 진짜 목적은 외계 존재의 관리가 아니라 그 존재에 관한 정보 자체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데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디스클로저 데이의 진짜 갈등 구도는 여기에 있습니다.
- 진실을 독점하며 통제하려는 자 (워덱스, 노아 스킨론)
- 그 진실을 세상에 공개하려는 자 (다니엘)
- 진실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 (관객)
로즈웰부터 2026년까지, 79년의 시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수치가 흥미롭습니다. 79년간의 거짓말. 1947 더하기 79는 정확히 2026년, 영화가 개봉하는 바로 올해입니다.
1947년은 로즈웰 UFO 사건(Roswell UFO Incident)이 발생한 해입니다. 로즈웰 UFO 사건이란 1947년 7월 뉴멕시코주 로즈웰 인근 목장에 원인불명의 물체가 추락한 사건으로, 미 육군 항공대가 처음에는 비행접시를 포획했다고 공식 발표했다가 24시간 만에 기상관측기구였다고 번복한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 현장 잔해 수거에 투입된 부대가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실전 투하했던 제509 폭격 비행단이었다는 점은 지금도 석연치 않은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순한 기상 장비 하나를 회수하는 데 최정예 전략 부대가 출동했다는 사실은, 저도 처음 접했을 때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30년간 조용히 묻혀 있다가 1978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마셀 소령이 공개 발언을 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2023년 미국 의회에서 50년 만에 UAP(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UAP란 기존의 UFO라는 표현을 대체하는 공식 군사·정보 용어로, 미확인 공중 현상 전반을 지칭합니다. 미 국방부는 이 청문회에서 군이 촬영한 영상 자료를 공식 공개했고, 전직 정보 장교 데이비드 그러쉬는 정부가 비인간 기원의 물체와 생체를 수십 년간 은폐해 왔다고 증언했습니다(출처: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오바마 전 대통령이 토크쇼에서 "외계인은 존재하지만 본 적은 없다"고 직접 말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도 로즈웰 사건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발언은 음모론의 영역으로 분류됐겠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외계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지 않는 시대가 됐습니다. 대신 왜 지금 공개되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디스클로저 워밍업, 즉 대중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미리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론 이건 인터넷 커뮤니티의 해석입니다만, 저는 이 해석 자체보다 이런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예고편에서 동물들이 등장하는 장면도 주목할 만합니다. 붉은 카디널, 사슴, 여우, 라쿤이 소녀를 조용히 바라보는 장면인데, 이 동물들은 여러 문화권에서 전령(messenger)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스필버그는 ET에서도 인간보다 동물이 먼저 이상 현상을 감지하는 연출을 즐겨 사용해 왔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 문법은 이어지는 것 같았고, 침공이 아니라 접촉을 다루는 영화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출처: IMDb).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디스클로저 데이가 6월 10일 던지는 질문은 외계 존재의 실재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는가일지 모릅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답이 정해진 SF가 아니라, 빈칸을 채워가며 보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