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에서 영화를 고를 때 "이거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하나?"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끝장수사를 보기 전에 그 고민을 잠깐 했었는데, 보고 나서는 결론적으로 아깝다는 감정이 더 컸습니다. 아까운 이유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잘 될 수 있었던 영화가 여러 이유로 제 가능성을 다 못 펼쳤기 때문입니다.
버디무비 공식에 갇힌 코미디, 왜 삐걱거렸나
끝장수사는 버디무비(buddy movie) 장르를 기반으로 합니다. 버디무비란 성격이 정반대인 두 주인공이 처음에는 충돌하다가 점차 호흡을 맞춰가는 서사 구조를 말하는데, 경찰 파트너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포맷입니다. 배성우가 연기한 제역과 정가람이 연기한 중어의 설정도 그 전형을 그대로 따릅니다. 잘 나가다 강등된 베테랑 형사와, 재벌 2세 인플루언서 출신 신입 경찰이라는 조합이죠.
솔직히 이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코미디를 구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건데, 캐릭터의 웃음 포인트는 그 인물의 논리 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관객이 "저 사람이라면 저럴 수 있겠다"고 납득해야 웃기거든요. 그런데 끝장수사의 코미디는 그 납득 과정이 너무 빨리 생략됩니다.
예를 들어 제역이 앙심 품은 건달에게 대마초를 몰래 숨겨 경찰에게 잡히게 만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캐릭터의 무모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읽히는데, 행동 자체가 너무 90년대식이라 지금 관객에게 통하기 어렵습니다. 캐릭터 일관성(character consistency)이란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내부 논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인데, 이 장면에서는 그 일관성이 흔들립니다.
중어를 내쫓으려고 선배 경찰들이 수작을 부린다는 설정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설정이 단순히 시대착오적이라기보다는 설명이 너무 부족한 탓에 납득이 안 된다고 봤습니다. 맥락이 조금만 더 채워졌다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끝장수사의 코미디가 힘을 못 쓰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캐릭터의 내부 논리 없이 상황 설정만 앞세운 코미디
- 1990년대 버디무비에서나 어울릴 법한 과장된 설정
- 두 인물의 관계 발전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맞짱 장면
- 이이섬이 연기한 검사 캐릭터의 과거 인연 설정이 서사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음
미국영화연구소(AFI)에 따르면 버디무비 장르에서 두 인물의 갈등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각 캐릭터가 명확한 결핍(character flaw)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결핍이 사건을 통해 보완되는 구조가 필수라고 분석합니다(출처: 미국영화연구소). 끝장수사는 이 구조의 틀은 갖추고 있지만, 초반 코미디 시퀀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에 그 결핍이 충분히 드러나기 전에 사건으로 넘어가버립니다.
수사물로 전환되는 순간, 영화가 살아났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건 이 영화의 진짜 힘은 중후반부에 있다는 겁니다. 윤경호가 연기한 조연 캐릭터의 비중이 커지는 시점을 기점으로 끝장수사는 코미디 버디무비의 탈을 벗고 본격적인 범죄 수사물로 전환됩니다. 이 전환이 의외로 자연스러웠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톤이 바뀌는 순간을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사건의 구조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제역과 중어가 처음 잡은 용의자는 단순 절도범인 줄 알았는데, 소지품에서 발견한 망치의 혈흔이 이미 종결된 살인 사건과 연결됩니다. 이미 다른 사람이 누명을 쓰고 수감 중인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누명 씌우기(wrongful conviction), 즉 피의자가 실제로 저지르지 않은 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 사법 오류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가진 진짜 딜레마가 드러납니다. 경찰이 경찰의 잘못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 그리고 진실을 밝히면 조직 내부의 부패가 드러난다는 현실적인 압박이 수사를 방해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 코미디로 시작한 영화가 이렇게 무게 있는 소재를 꺼낼 줄은 몰랐거든요.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3막 구조보다는 점층적 긴장감(escalating tension)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점층적 긴장감이란 작은 단서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사건의 규모와 위험도가 점점 커지는 방식을 말하는데, 끝장수사는 이 기법을 후반부에서 꽤 잘 활용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관객에게 큰 반전 하나를 던지는 것보다 훨씬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배성우의 연기도 이 흐름을 잘 받쳐줍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음주운전 사건과 별개로 배성우가 코미디 구간보다 수사물 구간에서 훨씬 안정적인 무게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연으로서의 카리스마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 건 알지만, 장르가 바뀐 후반부에서는 그 아쉬움이 상당 부분 상쇄됩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국내 극장 관객이 OTT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극장용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높아졌으며, 관객이 극장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으로 '몰입감'과 '극장만의 경험'이 꼽힌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끝장수사의 후반부는 그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긴장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쉬운 건 그 긴장감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7년이란 개봉 지연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후반부만큼은 분명히 건질 게 있는 영화입니다. 코미디에 쏟은 시간을 수사 서사에 더 투자했다면 훨씬 탄탄한 작품이 됐을 거라고 지금도 아깝게 생각합니다. 극장에서 보기엔 망설여지더라도 OTT로 접하게 된다면 후반부만큼은 충분히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겁니다. 버디무비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 공식에서 벗어나려 한 시도 자체는 분명히 기억할 만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