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니 애드센스 코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혈연, 가족의 의미,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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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혈연, 가족의 의미, 부모)

by 두쫀쿠먹고싶다 2026. 6. 16.


6년을 함께 살아온 아이가 내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래도 그 아이가 내 자식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질문이 그토록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3년 작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병원 측의 신생아 바꿔치기, 즉 출생 직후 아이가 뒤바뀌는 의료 사고라는 충격적인 설정 위에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조용하고 집요하게 묻습니다.

혈연인가, 함께한 시간인가 — 두 가족이 드러낸 것들

영화 속 두 가족은 처음부터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료타는 대기업에 다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아들 케이타에게도 피아노 연습과 바른 자세를 요구하는 엄격한 아버지입니다. 반면 유다이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뒹굴며 놀아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처음 이 두 인물을 보면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아버지냐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는데, 영화는 그 판단을 쉽게 내리지 않아서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개념 중 하나가 애착 형성(attachment formation)입니다. 애착 형성이란 아이와 양육자 사이에 장기적인 정서적 유대가 생겨나는 심리 발달 과정을 말합니다. 발달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은 혈연보다 실제 돌봄의 질과 반응성에 더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니까 6년을 함께 살아온 케이타가 료타를 아버지로 느끼는 건 혈액형 때문이 아니라, 함께 피아노를 치던 그 저녁들 때문입니다.

료타는 처음에 친생자 관계(biological parenthood), 즉 유전자를 공유하는 생물학적 부모 관계를 훨씬 더 중시합니다. 그는 "혈이 중요하다"는 말을 상사에게 들으면서 흔들리고, 친아들 류세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료타가 야속하다는 감정보다 이해한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혈연을 우선시하는 것이 비이성적인 선택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요.

영화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이 지점을 도덕적으로 심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료타가 옳다는 의견도 있고, 6년간 키운 아이를 포기한 게 잘못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영화는 그 복잡함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연출 기법은 관찰자 시점(observational filmmaking)입니다. 관찰자 시점이란 카메라가 인물의 감정을 과도하게 해설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일상을 담담하게 포착하는 방식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방식으로 인물이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장면 대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이나 짐을 꾸리는 손끝 같은 장면으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런 연출이 오히려 더 깊이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도 특정 장면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을 억지로 누르게 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게 바로 이 기법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족이 아이를 교환한 뒤 보여주는 모습들도 인상적입니다. 규칙과 예의 중심의 료타 가족 집에 온 류세이는 적응하지 못하고, 자유분방한 유다이 가족 집에 온 케이타는 낯설면서도 조금씩 녹아들려 합니다. 어느 환경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서로 다른 두 아이가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말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혈연은 관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함께 보낸 시간과 감정적 반응
  • 아이는 어른의 갈등을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음
  • 어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인지는 경제력이나 혈연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결정됨

케이타의 카메라 — 영화가 남긴 진짜 질문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저에게 예상 밖이었습니다. 료타가 케이타의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케이타가 몰래 찍어둔 사진 속에는 항상 바쁘고 엄격했던 료타의 모습이 가득했습니다. 케이타는 그 아버지를 늘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뭔가 말 못 할 감정이 올라왔는데, 지금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이의 시선이 아버지를 향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버지가 그걸 너무 늦게 알아챈다는 구조가 이 영화의 정서적 핵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가용성(emotional availability)이라고 합니다. 정서적 가용성이란 양육자가 아이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열려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료타는 경제적으로는 완벽한 아버지였지만, 정서적 가용성이 낮은 양육자였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점을 비난하기보다 그가 변화하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료타가 케이타의 뒤를 말없이 쫓아가는 장면, 그리고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은 어떤 대사보다 많은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고 느꼈습니다. 혈연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달려가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

한편 미도리, 즉 료타의 아내의 감정 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케이타의 짐을 꾸리면서 감추지 못하는 눈물, 류세이를 보내주고 나서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 같은 장면에서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 차이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내러티브(family narrative)의 거장으로 평가받습니다. 가족 내러티브란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와 역학을 서사의 중심에 두는 영화적 장르 분류를 말합니다. 그의 작품은 아무도(2004),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에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출처: 일본 영화진흥기구 VIPO).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 연작의 출발점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강한 갈등이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고 보면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잔잔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가족 내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터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쌓이고, 눈빛과 침묵으로 서로를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영화는 그 현실과 가장 닮아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인식 변화가 뚜렷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 외에 비혈연 동거,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 —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은 더욱 유효하게 읽힙니다.

영화는 케이타와 류세이의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 영화는 그 판단을 보는 사람에게 넘깁니다. 저는 그게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라는 문제에 누구도 대신 정답을 줄 수 없으니까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혼자 보거나 가족과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각자가 어떤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이야기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좀 더 알게 되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화려한 감동을 약속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보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 질문을 선물하는 작품입니다.


참고: https://youtu.be/HWo7Yk2gjck?si=ZHRJZrkYhw5YGw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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