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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홍보 전략, 자전적 서사, 상징 분석)

by 두쫀쿠먹고싶다 2026. 4. 20.


설명하지 않는 영화가 더 깊다는 말, 믿어지시나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조가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가슴에 얹혀 있는데 그게 뭔지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서사보다 감정과 질문을 먼저 꺼내드는 영화입니다.

광고 하나 없이 개봉한 영화, 그게 전략이었다면?

이 영화가 개봉 전 예고편도 홍보도 전혀 없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는 처음엔 그냥 지브리의 자신감 정도로 받아들였는데, 알고 보니 꽤 치밀한 판단이었습니다.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개봉 일주일 전 발간한 책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기존 홍보 방식대로 하면 흥행 성적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 흐름을 원하지 않았다고요. 정보 과다의 시대에 정보가 없는 것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이었습니다. 제가 영화 작업을 할 때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 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런 홍보 전략을 가능하게 한 건 재정적 기반이었습니다. 지브리의 2022년 결산 기준 총 자산은 267억 엔, 축적된 이익잉여금은 219억 엔, 순자산 비율은 92.4%였습니다. 여기서 순자산 비율이란 전체 자산 중 부채 없이 자기 자본만으로 채워진 비중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빚이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작비는 100억 엔 이상으로 추정되고, 제작 기간은 7년이었습니다. 일본 상업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10억 엔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치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다만 결과는 어느 정도 양면이었습니다. 흥행 수입은 84억 엔을 넘어 관객 수 566만 명을 기록했지만,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 5편이 연속으로 달성했던 흥행 수입 100억 엔 돌파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리서치 기업의 집계에 따르면 긍정 반응이 86%, 부정 반응이 14%로 나뉘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준 홍보 전략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 광고 없이 입소문에만 의존하는 방식을 선택
  • 파란 왜가리 이미지와 요네즈 켄시의 1인 기획사 로고 간 모스 부호 같은 힌트를 소셜 미디어에 게시
  • 엔딩 크레딧에 배역 없이 출연진 이름만 공개해 팬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

이 영화가 자전적 서사라는 것을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이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걸 알고 나면,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혹시 처음 보셨을 때 주인공 마히토가 왜 그렇게 감정 표현이 없는지 의아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처음엔 그냥 캐릭터 설계가 차갑다고만 느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의도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달리는 속도도 느리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도 내면에 가득 안고 있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 주인공이 바로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던 셈입니다. 마히토의 한자를 풀면 진실된 사람, 즉 진인(眞人)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름 자체가 캐릭터의 본질을 담고 있는 구조입니다.

이 영화는 내면적 갈등을 외적인 행동으로 치환하는 기법을 씁니다. 여기서 내면적 갈등의 외화(外化)란 캐릭터가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말이나 표정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이나 이미지로 드러내는 영화적 서술 방법을 말합니다. 마히토가 자기 머리를 돌로 찍어 피를 내는 장면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때린 아이들에 대한 복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새어머니를 향한 거부감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몸으로 터뜨린 것입니다.

영화 속 두 명의 어머니 형상도 인상적입니다. 병약하지만 엄격했던 히사코와, 아랫 세계에서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히미. 히미가 마히토에게 버터와 잼을 듬뿍 바른 토스트를 건네는 장면은 감독이 어린 시절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건강한 어머니와의 식사를 영상으로 그려낸 소망의 표현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먹먹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잼 병에 적힌 투모로(Tomorrow)라는 단어는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것으로, 오늘은 절대 얻을 수 없는 내일의 잼이라는 상징입니다. 이 섬세한 인용 하나로 장면이 훨씬 무거워집니다.

감독이 어릴 때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요시노 겐자부로의 원작 소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37년 출간되었습니다. 1937년은 일본이 전쟁에 본격 돌입하던 시기이기도 하며, 마히토의 어머니가 이 책에 편지를 써넣은 해도 동일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맞춰 넣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탑과 무덤, 새가 상징하는 것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탑, 무덤, 새. 이 세 가지는 그냥 배경이 아닙니다.

탑은 아랫 세계로 향하는 입구입니다. 탑의 입구에 새겨진 이탈리아어 문장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3곡에 등장하는 지옥문의 문구에서 차용했습니다. 여기서 변옥(邊獄, Limbo)이란 세례를 받지 못한 영혼들이 천국도 지옥도 아닌 경계 공간에 머무른다는 중세 신학 개념입니다. 마히토가 내려간 바다의 세계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로 설정된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황금문 옆에 자리한 무덤은 큰할아버지가 봉인해 둔 죽음의 공간입니다. 큰할아버지는 13개의 돌로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13개는 미야자키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13편의 작품에 대응합니다. 그리고 큰할아버지의 모델은 2018년 세상을 떠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카하타 감독은 상업적 성과보다 작품과 세계관을 우선했던 인물로, 미야자키 감독이 청춘을 함께 바친 선배이자 현자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설정은 감독이 작품을 통해 그를 추모하는 방식으로 보입니다.

파란 왜가리는 마히토를 아랫 세계로 유인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와 미야자키 감독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이 다툼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45년 가까이 지브리를 함께 이끌어온 동료가 됩니다. 왜가리가 끝까지 악역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는 결말이 그 관계를 반영합니다. 한편 와라와라는 미래에 태어날 생명의 씨앗이고, 펠리컨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머무는 존재입니다. 이 두 이미지를 함께 놓으면 이 영화가 얼마나 꼼꼼하게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그리고 있는지 느껴집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전적 서사(autobiographical narrative)를 구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영화처럼 상징과 이미지만으로 감독의 내면을 전달하는 방식은 매우 드뭅니다. 자전적 서사란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이나 감정을 허구의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 문법입니다. 애니메이션 산업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작가주의적 접근이 상업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유효한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출처: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 데이터베이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설명 없음의 힘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작업을 해보면서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서 자꾸 설명을 덧붙이게 되는 경험을 했는데, 이 영화는 그 불안을 완전히 역전시켜 보여줬습니다. 설명하지 않을수록 관객의 해석이 깊어진다는 것, 이건 제 생각이 바뀐 지점이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쉽게 소비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나서 모든 걸 이해했다는 기분보다는 뭔가를 잊고 살았다는 기분에 가깝습니다. 그 불명확한 감각 자체가 이 영화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두고 큰 메시지도,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도 없다고 했습니다. 단지 각자가 어떻게 살아갈지 작은 답을 얻어 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이었겠지요. 저는 이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아무 정보 없이 그냥 보러 가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지브리가 홍보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관람 후에 직접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지브리 공식 채널에서는 작품 관련 공식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사이트).


참고: https://youtu.be/S57HCigXvUU?si=AJT0IxJTtkd23N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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